참으면 터진다 소설

참으면 터진다 

                        

 

부들부들, 손이 떨린다. 가슴이 메여오고, 머리가 어지럽다. 펜 끝에서 전해오는 이 죽음의 감촉이 너무나도 낯설다. 펜으로 죽음을 그리게 될 줄은 평생 상상도 못했다. 내가 쥔 것은 펜이 아니라, 사형선고를 하는 판사의 봉이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대신 해드릴까요?”

대신.. 해준다? 지금의 이 상황을 누가 대신 해준다면 그저 고맙단 생각만 들것이다. 하지만 내 아내의 목숨을 대신 내어 줄 수는 없다. 아내를 낳은 건 장인 장모였지만, 그녀의 삶은 내가 직접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어떻게 내손으로 죽여야만 하는 건지 모르겠다. 꿈이 아닐까. 눈은 파삭파삭 타들어가듯 건조하다. 가슴속에 눈물이 고인다. 부들부들, 손을 떨다가, 만근 같은 고개를 들어 벽에 붙은 거울을 쳐다본다. 흠칫, 빨간 도깨비가 서있다.

“앞으로 한 달을 넘기기 힘드실 거 같습니다. 이제 좀 준비하셔야겠어요.”

한 달하고 보름 전 담당 의사가 2년을 병상에 누워 있던 아내에게 1개월의 시간을 주었다. 하지만 아내는 여적 살아 있다. 살아 있다? 아니다. 아마 단식을 3개월쯤 하고 있는 사람에게 ‘살아계시네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 아내는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다고 표현함이 옳을 것이다. 이젠 신음조차 내지 않는다. 무릇 인생의 마지막을 달려가는 환자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죽음으로 진입하는 것은, 핏덩이가 어머니의 자궁을 열고 나오는 것과는 비교 할 수 없이 힘든 것이라고. 저쪽에서 이쪽으로 오는 길과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는 길은 서로 다른 고통의 문지기가 지키고 있다.

“할머니가 삶에 대한 의지가 대단하시네요. 하하”

‘하하’

의사 놈의 성격이 워낙에 낙천적인건지 모르겠지만, 그 하하 웃음 때문에 이놈에 의사를 그냥, 확. 나는 또 속으로 참으며, “네네..잘좀 부탁드립니다. 의사선생님.” 눈알이 파삭파삭 타들어가고 머리 속이 뜨거워진다.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아내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더 살터이니 말이다. 굽신굽신 거릴수록 더 오래 사는 것이 인간의 생리이다.

 

그리고 의사의 마지막 처방은 치료를 중단 하자는 것이었다.

 

김 할머닌지가 산소 호흡기를 때고 나서 내 아내의 담당의사도 산소 호흡기를 때길 원하고 있다. 한 달이 지났는데도 아내가 죽지 않자 조급한가보다. 살리라는 환자는 살려놓질 않고 죽을 날을 점치다 안 되니 죽이려 들고 있다. 이래저래 용하지 못한 의사다. 개 같은 놈. 거기에 내 막내딸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동의를 하고 나를 설득했다. 아내가 애지중지 키운 막내가 그녀를 죽이고자 한다. 막내는 그것이 죽이는 것이 아니라 처방이고 치료라 했다. 치료에도 유행이 있다는 거 같다. 아니 이건 치료가 아닌대. 유행이 아니라 가망이 없다고 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

치료 중단 이야기를 듣고 아내 옆에서 꼬박 일주일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누가 이 아내의 산소 호흡기를 때면 어쩌나 했다. 나란 인간은 남들한테 평생 욕 한번 못해봄과 동시에 평생 화 한번 못 내본 인간이다. 누군가 저 호흡기를 때는 상상을 해본다. 아내가 숨을 헐떡이며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 곧 아내가 죽는다. 나는 멍하니 바라만 보다가, 이내 화가 나지만 참는다. 잘하셨어요. 그렇게 해주길 2년이나 참아왔습니다. 그리곤 냉장고 위에 있는 과도를 들고는, 과도를 들고는, 사과를 깎으려나.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과를 깎는 소리마냥 정겨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버지, 얼른 거기 오른쪽에 사인하시구 집에 가서 쉬세요. 아버지도 지금 몸이 많이 안 좋으세요.”

막내 딸애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한 것이, 지금은 얼마 안 있으면 박사님이 된단다. 딸애의 말을 잘 들었어야 했다. 딸애의 말을 안 들어서, 계돈도 때이고, 집도 넘어갔다. 막내의 말을 철썩 같이 믿을 때가 온 것이다. 막내는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아내에게 더 이상의 무의미한 삶과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라 했다. 그것은 하나의 선물이라 했다. 선물?, 이제 까지 아내에게 변변찮은 선물 한번 해본 적 없는 대, 아주 큰 선물을 주게 되었구나. 하긴 고통에 절여져 있는 인간에게 죽음은 가장 큰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몸살 환자에게 간호사의 주사가 삶의 진리이듯 말이다. 하지만 주사도 아니고 죽음을 선물하는 난 판사도 아니고 산타클로스도 아니고 뭘까.

부들부들, 김인성 세 글자를 사인(sign) 해야 한다. 누군가 아내의 사인(死因)이 뭐냐고 물으면 내가 사인(sign)한 것이 사인(死因)이란 말은 차마 못할 것이다. 김인성(金 忍 性)이라니 부모님도 참 야박하시다. 60년을 참고 또 참아 온 인생이다. 누가 시키는 대로만 해온 인생, 그게 잘되든 잘못되든 항상 속으로 참고 또 참아왔다. 아내의 죽음을 앞두고 참는 심정이란. 하지만 끝까지 반대하지 못했다. 60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민주화 운동이니 뭐니 할 때도 난 집안에서 꼼짝 안했다. 누구 한명 나보고 나가보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때 나가 죽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으로, 내 발로 나갔다면 손해 보았을 것이다. 보증을 서주면 연 이천만원 씩 갖다 준다던 친구 놈의 말에 속아 30년 일해 겨우 얻은 집 한 채가 날아갈 때도 내 눈은 파삭파삭 말라갔고, 가슴만 미어터졌을 뿐이다. 난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부들부들, 연명 치료 중단 동의서 한 장에 사인을 한다. 침이 꼴깍, 얼굴이 파랗게 물든다. 그리고 종이 쪼가리 한 장이 파랗게 되었다. 마치 죽은 사람의 얼굴처럼 시퍼런 종이가 나와 대면하고 있다. 시퍼런 것들이 서로 마주 보니 아주 가관이다. 파란 얼굴과 파랑 종이와 파란 미래에는 희망이 가득할 것이다. 파란색은 항상 희망 가득한 색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 아내의 미래인가, 하듯. 김인성. 탕, 탕, 탕.

만근 같은 고개를 종이에서 때어 낸 뒤, 다시 한 번 거울을 바라본다. 흠칫. 이런 몰골을 하고 있다간 아내가 깨어나도 놀라 죽을게 뻔하다. 이젠 나도 좀 쉬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거뭇거뭇 퀭한 얼굴을 바라본다. 내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거울 속의 나는 싱긋 웃는다. 기름에 떡이 진 머리를 한번 쓸어 넘긴다. 아내의 산소 호흡기를 빼앗아 내 코에 들이밀고 옆에 눕는다. 일주일간 많이 고생했으니 링거는 못줘도 신선한 산소는 줘야겠다. 잠깐만 빌릴게. 여보, 우리 잠자리 같이 한 게 얼마나 됐지? 응? 아니 그냥 그렇다고. 그냥 피곤해서 옆에 만 누워있을게. 아내의 옆에 누워 산소 호흡기를 통해 호흡을 하니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피로를 풀고 있는대 그만 아내가 벌떡 일어나 종이를 빼앗아 들고는 서명 란에 자기이름을 서명을 한다. ‘안돼 안돼!’ 거울 밖의 나는 순간 긴장이 풀리고 머릿속이 주저 않는다. 병실 안 가득한 긴장감이 내 얼굴을 짓이긴다. 눈알이 부풀어 오른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물이 흐르고 있다. 이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눈에서 파란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파삭파삭 타들어간다. 아내를 내손으로 죽이다니. 그녀의 삶이 고통으로 얼룩지더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죽여야 한다. 입원비가 부담 되 자식들이 눈치를 보고 있다. 의사 선생님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막내의 말을 이번엔 들어야 한다. 그녀는 나 같은 놈을 만나 죽음 같은 고생만 해왔다. 죽음 같은 고생 후에 고생 같은 죽음을 맞는 건,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살아가는 것보다 더 무의미한 삶이다. 아내에게 진 빚을 아직 갚지 못했다. 하지만 의사와, 막내와, 내 지난 삶들은 그녀를 죽이고자 한다.

“아버지, 뭐하세요? 다하셨으면 이리 주세요.”

뭐하냐는 막내의 말에 타들어가던 심장이 일순간 강한 펌프질을 한다.

“무얼 하냐고!? 그게 지금 네 입에서 나올 소리더냐!”

평생 누구한테 소리 한번 질러 본적 없는 내 모습에 병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놀란 모습이다. 이 모습을 내 아내만이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아내의 한쪽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듯하다. 이 인간이 화도 낼 줄 아네. 30년을 같이 살아왔지만 저런 꼴은 처음이라는 듯. 적막이 흐른다. 산소 호흡기를 통해 오가는 호흡만이 이 병실의 유일한 소음이다. ‘보글보글’ 작은 통에서 산소가 만들어진다. ‘보글보글’ 내 머리에서 김이 나고 있다. 막내 딸애가 병실을 가득 매운 보글거리는 소음을 뚫고 입을 열었다.

“아버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저희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자고 한건 아니잖아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이렇게 어머니가 계속 병상에서 이젠 희망도 없는 치료 받으시면서 계속 고통스럽게 사시느니 편히 보내드리려 하는 거잖아요. 아버지도 지금 많이 몸이 안 좋으시고, 저도 속상해요. 그럼 지금은 그냥 이렇게 저희가 간병하고 있을게요. 아버진 가서 좀 쉬고 오세요.”

“예. 아버지, 작은 애랑 제가 어머니 옆에 잘 있을 테니까요. 어머니 걱정은 하지 마시고 가서 좀 쉬고 오세요. 일주일간 병실에만 계속 있으셨잖아요. 숨소리도 고르지 않고 아버지 많이 수척해지셨어요.”

큰애는 남자 놈이 저 사업돌보기도 바쁜데 지 엄마 병간호 한다고 매일 같이 와서 나와 함께 고생중이다. 엄마 병실을 출근 전에 들리고 퇴근해서 들린다. 지체 높은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나 변변치 못한 대학 나와, 하는 일마다 변변치 못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애미 호강 한번 못시켜 준 게 한이 되나보다. 이런 아이들 앞에서 화를 내니 어색하다. 엉덩이가 따갑다. 병원의 쌉쌀한 공기가 아닌 시원한 공기를 쐬고 싶다. 아내도 일주일간 옆에 있었더니 내가 지겹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마지못해 2년만의 첫 휴식을 얻게 되었다. 꼬깃꼬깃 창백해진 파란 종이 한 장을 주머니에 쑤셔 넣은 채, 병원을 나왔다. 2년 동안, 아내 병간호를 하면서 술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았다. 나까지 성치 않으면 무슨 수로 버티나 했다. 오랜만에 술 한 잔 해야겠다.

일주일 만에 나온 병원 밖 풍경은 낯설었다. 경희궁 길을 따라 종로로 향한다. 겨울이라 해는 일찍 넘어갔다. 도로엔 전등을 켠 수많은 차들이 지나간다. 어둠은 죽음의 영역이다. 죽지 않으려고 차들은 전등을 켠다. 어둠 속에서 차들이 이리저리 잘도 죽지 않고 쌩쌩 지나간다. 아내에게 산소 호흡기 대신 전등을 달아 줄걸 그랬나보다. 전등을 달고 죽음을 이리저리 잘도 피해 다닐 아내를 생각해 본다. 전등을 단 아내가 쌩쌩 지나 갈 때마다 찬 바람이 불어온다. 씁쓸한 추위가 엄습해온다. 옷깃을 여미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본다. 주머니 속 구겨진 종이를 한번 꽉 움켜쥔다. 오줌이 마렵다.

종로 피맛골 자주 드나들던 술집에 들어갔다. 희미한 전등이 10년 넘게 불을 밝히고 있다. 낡고 헤진 벽지들이 나를 반겨준다. 낡은 테이블이 누런 빛을 내고 있는 구석자리로 간다. 나는 우선 빈속에 소주잔을 들이킨다. 술이 얼큰하다. 찌개 국물은 밋밋하다. 주위를 두리번 거려본다. 군대 군대 나와 같은 술자리가 보인다. 2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항상 그 자리에서 그들과 나는 같은 안주와 같은 술을 시켜 이렇게 취해왔을 것이다. 한동안 병든 공간에 움츠리고 있어서 그랬던 걸까. 병들어 가던 내 몸이 잡다한 음식들의 냄새와 목구멍을 통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소주, 그리고 이 익숙한 풍경들 속에서 다시금 살아 있음을 느끼는 듯하다.

술병이 한 병 반쯤 비워졌을 때 오랜 친구인 박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이군. 박은 어떻게 알았는지 매번 이렇게 연락도 없이 불쑥 이곳에 나타난다. 앉자마자 박이 그 동안의 사정을 듣고선 연거푸 잔을 들이킨다. 그는 삶에 의욕이 넘치고, 매사에 능동적인 사람이다. 한동안 말이 없다. 어색하지 않다. 그와 나는 술자리에서 반시간을 벙어리로 보낸다. 술병이 한 병, 두 병 비워진다. 갑자기 볼이 빨개지고 뜨거운 기운이 가슴속으로부터 올라온다. 술기운이 오르면 박이 항상 먼저 말을 건다. 오줌이 마렵다.

자네는 살인자야. 흠칫, 그의 첫마디에 놀란다. 박은 내 행동과 성격을 항상 못 마땅해 하긴 했지만 모두 이해 해주었다. 그리고 내 어쭙잖은 화풀이에 동조해주는 편이었다. 그런 그가 날 비난한다. 자네가 수 십 년간 수동적으로만 살고, 남들한테 표현한번 못하고 꾹꾹 눌러 참고 온 걸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지? 안 그런가? 자넨 그래도 나한테는 속마음 털어놓았잖아. 그래도 난 그런 자낼 설득하려하진 않았네. 왜냐면 그게 자네 인생이고.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살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세상엔 자네 같은 사람, 나 같은 인간이 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똑같은 인간들만 즐비하면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인가 로보뜨 세상이지. 하지만 이건 아니라고 보네. 사람 생명 함부로 놀리면 그건 못된 짓이지. 생명 경시 풍조가 아무리 요새 세상의 대세라 자기 목숨 쉽게 내친다고들 하지만 이건 자네 목숨이 아니지 않은가. 수십 년을 같이 살아온 자기 아내를 죽이는 이런 몰상식한 태도는 없어져야 하네. 이번 일에 있어선 세상엔 다 나 같은 사람만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네. 자네 같은 인간들이 가득하다면 이 세상은 정말 살만한 곳이 못 되. 그렇게 생각지 않나 이 살인자야. “아니 박 그게 무슨 말이야. 난 살인자가 아니야. 단지 고통 속에서 삶이 더 이상 무의미해진 아내를 편하게 해주려는 것뿐일세. 내가 아내를 단박에 그냥 죽이려했는지 아나. 얼마나 많은 생각과 생각을 거쳐 나도 겨우 결정한 거라네 이 사람아”

“꼴꼴꼴꼴..”

소주를 따르는 정겨운 소리가 나와 박의 테이블을 가득 메운다. 가득채운 소주잔을 들고, 박이 꼴, 꼴, 꼴 냉소를 짓고 있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긴장된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그를 경계하게 된다. 과연 그 결정이 자네 아내를 위해서만 내린 결정이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겠는가? 자네의 그 생각과 생각의 과정 속에 아내가 과연 얼마나 중요했느냐 이 말일세. 2년간 병간호 하느라 지친 자네와 가족들 그리고 점점 감당할 수 없어지는 입원비와 고명하신 의사 선생과 막내의 말이, 자네의 아내 보다 더 큰 존재감으로 자네 마음속에서 살인을 부추기는 것은 아니고? 뜨끔, 머리카락이 곤두섰다가, 다시 곤두박질한다. 병째 소주를 들이켜 본다. 잠시 고개를 좌우로 흔들다 이내 눈동자를 좌우로 흔든다. 하지만 맞는 말일 것이다. 지금 내 머리와 가슴속에 있는 것은 아내 뿐 만이 아니다. 의사와 큰애, 작은애, 그리고 내가 서로 뒤엉켜 싸우고 있다. 아니, 아내만이 홀로, 다른 패거리들에게 힘겹게 쥐어 터지고 있을 뿐이었다. 권투경기 역사상 연장 25회전 까지 가는 접전이 있었겠는지 모르지만, 그 25회전에서 아내는 남편의 핵 펀치를 맞기 직전인 것이다. 이제 아내는 넉 다운만 남았다. 하지만 내 책임이 아니다. “가장으로써 어찌 아내만 생각할 수가 있겠는가. 애들도 살아야 하고, 나도 이제 얼마 오래 못살겠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나. 더군다나 우리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의사 선생님께서 가망이 없다하는데, 치료를 더 할 필요가 없다는데, 그 말을 잘 따라야 할 것 아닌가.” 그렇다. 난 명성이 자자했던 어느 감독의 흰 수건을 대신 받아 던질 뿐이었다.

자네는 항상 그런 식으로 자신을 합리화했지. 스스로 어떤 판단을 하기보단 누군가 자신보다 더 나아 보이는 사람들의 입을 신뢰하고, 자네는 거기에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네. 그리고선 책임을 회피하겠지. 남들이 시켰으니 내 책임이 아니다. 결국 자네 아내를 죽였다는 죄책감 없이 잘한 일이라 여길 것이고, 의사 선생님이 시켰으니깐, 가족들이 한두 달치의 입원비만큼 더 잘살게 되었으니 잘 한 거라고 자신을 칭찬하겠지. 그런데 왜 이번엔 참지 않은 겐가? 내게 주절주절 자네가 참으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 대해 쌍욕을 잘도 하던 자네이지 않은가. 화장실이 고장난 술집에서 지랄 같은 오줌은 잘 참고 있어도 아내의 얼마 안남은 목숨을 두고선 참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났나 보지 이 더러운 살인자. 그렇게 사는 거 아니네. 이 개새끼. 십새끼야.

순간 술집의 오래된 전등이 깜박이며, 숨을 죽인다. 시계의 시침은 한 바퀴를 돌고 두 바퀴를 돌고..다시 제자리로 어느 순간에도 제자리로 향한다. 술집의 모든 술들이 증발한 듯 알콜의 강한 향이 공기를 대신하여 내 코와 입을 드나드는 순간, 이곳, 저곳의 테이블에서 개새끼와 십새끼가 들려온다. 2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저들과 우리는 술만 먹었다하면 개새끼와 십새끼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항상 우리를 못살게 구는 놈들. 아주 죽일 놈일세. 인간 같지도 않은 개새끼와 십새끼들. 인간으로써 어떻게 그런 짓을 저지른단 말인가. 그런 놈들은 다 죽어버려! 그런대 그 개새끼와 십새끼가 지금 여기 나란 말인가.

“아니야!”

소리를 지르며 일어서는 날 바라보는 박은 알싸한 알콜 같은 비웃음을 입 안 가득 담고 있었다.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도 나를 비웃는 듯, 술집과 술잔들과 술병들도 모두 나를 비웃는 듯 고요한 비웃음의 일렁임이 나를 감싸 않는다. 자리를 박차고 나와 얼른 계산을 하고 출입문을 향했다. 박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있다.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일어나질 않는다. 항상 박은 술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는 법이 없다. 그의 비웃음이 날 혼란스럽게 한다. 저런 적이 없었는데.. 그는 왜 저렇게 변한 걸까. 혼란스러운 가슴을 쓰다듬으며 혼자 술집을 나온다.

거리엔 매서운 추위에 사람들이 옷을 두껍게 여미며 종종 걸음으로 다니고 있다. 헤드라이트를 켠 차들은 여전히 분주하게 어디론가 어둠을 뚫고 지나가고 난 그것을 잠시 멍하니 보다가 이내 뛰기 시작한다. 인천행 막차를 타려면 얼른 달려가야 한다. 오줌이 마렵다. 열차를 놓치면 집에 못 간다. 병원으로 가긴 싫다. 참아야 한다. 방광을 움켜잡고 화장실을 지나쳐본다. 잠시 화장실을 곁눈질하다 이내 지하철을 타기 위해 다시 뛴다. 화장실이 나를 향해 손을 뻗어온다. 화장실의 마수를 피해, 개찰구를 통과한다. 오줌이 마렵다.

문이 닫히려는 찰나에 문틈으로 몸을 끼워 넣었다. 덜컹 거리는 소리와 함께 방광이 충격을 받고 신음한다. 문이 다시 열리고 몸을 들이 밀었다. 가까스로 인천행 마지막 열차를 탔다. 열차 안이 한산하다. 서서 가는 사람은 서 너 명 정도 인거 같다. 방광 안은 부산하고, 서서가는 오줌들이 차고 넘친다. 인천행 막차의 승객이 이렇게 없기는 10년에 한번 있을까. 나는 지하철 마지막 칸의 마지막 출입구에 위치한 노약자석에 앉았다. 엉덩이를 의자 깊숙이 묻고선 허리를 구부린다. 그렇게 해서 충격에 놀란 방광의 안전을 도모한다. 갈 길이 멀다. 60년 인생은 순식간이었고, 방광 옥체 보존하여 집에 가는 길은 머나먼 우주의 미래이다.

술을 먹으면 주정을 하진 않지만, 잠이 온다. 꾸벅꾸벅 존다. 오줌이 마렵다. 잠이 깬다. 꾸벅꾸벅 졸면서 오줌이 마렵다. 콩팥을 거친 수분들이 방광으로 더 모여들기 시작한다. 어렸을 적 차고 놀던 돼지 방광이 생각난다. 내가 잔인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돼지 걱정 따위 할 상황이 아니다. 내 방광을 발로 차는 상상을 해본다. 왜이래 뭐하는 짓인가 자네. 그만두자. 배가 고플 때 먹을 걸 생각하면 더 배가 고파지듯, 지금은 방광과 오줌을 생각하면 안 된다. 남들 몰래 외투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바지 단추를 끌렀다. 단추를 끌은 만큼 방광은 커지고 오줌은 더 모이는 느낌이다. 댐이 붕괴 직전이다. 수문을 꽉 닫아야 한다. 아랫배에 힘을 준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주먹을 힘껏 쥔다. 파란 종이가 잡힌다. 움켜쥔 파란종이가 질식하고 있다. 종이 한 장이 내 주머니 속에서 발버둥 치고 있다. 발버둥 치는 종이를 붙잡고, 있는 힘껏 오줌을 참고 또 있는 힘껏 쥐어 짜내듯, 그렇게 힘을 준다. 파랗던 종이가 이내 얼굴이 빨개지며 터질듯하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금이 가는 방파제를 막던 네덜란드 소년의 심정으로 손가락 끝을 이용해 마지막 최후의 힘을 준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종이에 구멍이 나버렸다. 종이가 창백해진다. 그리고 주머니속이 잠잠해졌다.

꽉 움켜진 주먹에서 힘이 풀린다. 눈이 흐려지고 주위가 어두워진다. 어두워지면 어두워질수록 내 속에선 무언가 터져 나오려 한다. 한없이 내 아랫배가 부풀어 온다. 마치 임산부의 10개월을 순식간에 겪는 기분이다. 저기 저 임부의 복부엔 새 생명이, 내 속엔 누렇디 누런, 참을 만큼 참고, 고이고 고여 이제 더 이상 썩어버리기 싫은 그 동안의 세월이 담겨있다. 이제 이 세월을 놓아주어야 할 때가 된 건가. 아랫입술을 깨물다가 아내의 얼굴이 문득 떠오른다. 이런 나를 끝까지 남편이라고 잘도 살아주었다고 생각한다. 고맙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안 되겠다. 방생해주자, 나를.

정해진 방법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그 동안 고생한 날 위해 편하게, 일단 자세부터 바로 잡아야겠다. 하지만 익숙지 않다. 의자 깊숙이 묻혀있던, 그래서 또 참으며 집으로 가야 했던 몸을 의자에서 빼내 엉덩이만 걸터앉았다. 걸터앉음이 익숙지 않다. 자꾸만 앞으로 고꾸라진다. 머리가 무겁다. 팔이 떨린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의 익숙함이 나를 나약하게 만든다. 두려운 건 아니다. 망설일 것도 없다. 참을 만큼 참았다고 기장이 방송을 한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이젠 내속에 있는 것을 내보내줘야 한다. 더 이상 붙들고 있을 순 없다. 그래서 오른쪽으로 내보내야 한다. 내려야 할 문은 오른쪽에 있다. 나완 상관없는 사람들을 지하철로 들이고 보낼 때처럼 애틋한 느낌으로 오른쪽 출입구를 바라본다. 이제 지퍼를 내린다. 반대편 노약자석에서 처녀시절 아내와 같이 긴 생머리를 한 여자가 날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신경 쓰인다. 그녀는 날 유혹한다. 유혹 당한다. 그리고 빤쓰를 내린다.

‘툭’

툭, 마치 뉴턴의 사과와도 같이 중력의 속도로 떨어지는 나의 물건이다. 이 기다랗고 거무튀튀한 것은 내 인생의 거울이었다. 마치 모든 걸 예지하고 있었다는 듯. 처음 자위를 하던 때, 무릇 누군가의, 그 어떤 남자의 물건도 예외 없이 그러하듯, 내 것도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너덧 번의 흥분이 오르내리고 너덧 번의 경멸이 오르내렸다. 그리곤 희뿌연 눈물을 흘리고 다시 축 처져버렸다. 첫 오르가즘은, 마치 성공한 사람들의 기쁨이란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할 만큼 짧고 강한 짜릿함이었다. 하지만 내 인생은 성공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기쁨이었고 발기였다. 오랫동안 서있질 못했다. 내 인생도 내 물건도. 올라갈 만하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댔다. 그야말로 희뿌연 눈물이었다. 서 있다가 울고 주저앉았다. 서 있다가 울고 주저앉았다. 하지만 끝내 죽지 않고 참아냈다. 참을성은 내게 있어서 정상에서 발휘되는 능력이 아니었다. 그건 다시 주저앉은 내 성기를 부여잡고 다시 발기시키는 끈기요 참을성이었다. 못해먹을 짓이었다. 마치 기다란 캐러멜이 늘어지듯, 이젠 이 녀석도 한계인거다.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으면, 유혹하는 여인네의 앞에서, 60년 한 서린 인생을 토해내는 이 시점에, 너는 그렇게 추욱. 그리고 추욱 쳐진 놈의 입에선 노오란 고통이 흘러나오려 한다. 터질 듯 한 댐을 간신히 닫고 있던 수문이 열리고 지나온 인생과도 같은 그 길을 지나 오줌이 흘러나온다.

‘졸졸졸’

댐은 터졌는데 수문이 구식이라 그런지 오줌발이 시원치 않다. 하긴 그 간에 이런 일이 있어봐야 말이다. 말 그대로 ‘졸졸졸’. 큰 아이가 어릴 적 유치원을 다녀와서 내 앞에서 동요를 부르던 게 생각난다. ‘시냇물은 졸졸졸졸~. 고기들은 왔다갔다~...’ 노란 시냇가에 고기들이 왔다 갔다 하려는지 모르겠다. 졸졸졸 약수처럼 플라스틱 관이 아닌 단백질 관을 따라 나온 노란 물이 바닥에 고인다. 고이고 고여, 인간은 병들어간다. 쌓인 것이 많을수록 그걸 풀어낼 길이 없을 때 자신의 몸을 더욱 망치게 된다. 누구는 암이 걸리고, 누구는 당뇨가 생기고, 나는 내 거기를 힘없는 약수 꼭지로 만들어버렸다.

‘졸졸졸..’ 끝도 없이 나온다. 이의 없이, 참으며 살아온 60년 인생이 내 속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내 인생은 누런 거품이다. 누런 거품이 한 대 모였다가 지하철의 서행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내 인생도 이제 저렇게 나아가는 것인가 상상한다. 누런 고통의 흔적들이 세 줄기가 되어 흘러간다. 줄기들이 한없이 나아간다. 좁디 좁은 지하철의 한 칸은, 멀고 먼 인생이다. 멀고 먼 인생의 끝까지 나는 내 줄기들이 멈추지 않고 끝까지 가길 원한다. 그리하여 계속해서 뱉어낸다. 서있던 사람들이 내 줄기들이 끝까지 가도록 비켜준다. 앉아 있던 사람들도 내 줄기들이 끝까지 가도록 발을 들어준다. 그들은 나의 친구들이다. 언제나 나와 같이 아침과 저녁으로 이 지하철의 한 칸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언제나 나를 욕하고, 나를 등쳐먹고, 나를 화나게 하고, 나를 무슨 일이 있어도 참게 만들었던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오늘은 날 위해 양보한다. 길을 내주고 있다. 그리고 지하철의 반대편 연결통로엔 아내인 듯, 할멈 하나가 날 손짓하고 있다. 그 손짓에 한쪽 눈을 찡그려본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좋다. 난 저들이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저들이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친근하다. 저들의 수군거림이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내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무슨 말을 할지 뻔하다. 힘겹게 살아왔던 어제의 이야기, 참아야만 했던 오늘의 이야기, 그리고 희망의 내일을 이야기 할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과 나는 공감 할 수 있으며 이 웅성거림으로 인해 나는, 이 지하철의 노약자석에서 오줌을 갈기는 타인이 아니라 오줌을 갈기는 우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웅성웅성, 그들의 수군거림에 맞추어 나도 혼자 중얼거려본다. 의사와 첫째와 막내를,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를 이야기 해본다. 그들도 내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내 고통과, 고민을 그들은 이해해 줄 것이다.

내 앞에서 나를 유혹하던 여인이 나를 멍하니 쳐다본다. 내 아내도 부끄럽게 쳐다보던 내 물건을, 내 아내도 한번 본적이 없는 내 오줌을, 멍하니 쳐다본다. 그녀의 시선에 나는 자신감이 붙는다. 더 열심히, 열심히, 하지만 ‘졸졸졸’ 나를 뱉어낸다. 내 앞에 있는 ‘그녀’를 위해 그리고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선물을 할까 한다. 오늘은 위대한 날이다. 참아왔던 내 삶을 벗어던진 날이다. 이런 위대한 날엔 소소한 선물을 해야겠다. 종이배를 접어야겠다. 주머니에서 굳어버린 차가운 종이를 꺼내 배를 접는다. 지하철이 또 서행하기 시작한다. 일렁이는 노란 물결 위에 구멍이 난 흰 배를 흘려보낸다. 흰 배가 헤엄치는 고기들과 같이 멀리 멀리 떠나간다. 세 글자의 이름이 적힌 흰 배가 떠나간다. 웅성웅성. 기장이 방송을 한다.

 

‘내리실문은 오른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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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나는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속죄하고 싶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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